"암세포 죽이기 대신 정상화"

"암세포 죽이기 대신 정상화"

운영자 0 137 09.10 00:42

"암세포 죽이기 대신 정상화"… 국내 연구진이 새 치료법 찾았다

문지연 기자

입력 2025.09.0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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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전경. /뉴스1

 

암세포를 정상에 가까운 상태로 되돌리는 ‘분자 복귀 스위치’ 기술을 국내 연구진이 최초로 개발했다. 암세포를 파괴하는 데 초점을 뒀던 기존 치료와 달리 부작용을 줄이고 근본적 해결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9일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신동관 생물정보연구과 교수와 조광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팀은 공동 연구를 통해 시스템생물학 기반의 원천 기술 ‘리버트(REVERT)’를 개발했다. 시스템생물학이란 복잡한 생명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IT 기술, 수학적 모델링,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활용해 분석하고 분자세포생물학(BT) 실험과 결합하는 연구 방법이다.

기존의 치료는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처럼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중점을 뒀었다. 그러나 이번에 개발한 치료법은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되돌려 부작용을 줄이고 근본적인 치료를 가능케 한다. 그간 오랫동안 학계의 숙원으로 여겨져 왔지만, 어떤 유전자를 조절해야 세포를 되돌릴 수 있는지 명확히 규명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연구팀은 우선 단일세포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정상 세포와 암세포의 경계 지점인 ‘임계전이 상태’를 포착했다. 세포가 암으로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의 상태를 말하며, 외부 개입이 있다면 정상으로 되돌릴 기회의 순간이기도 하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토대로 세포 안 유전자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영향을 주는지 지도를 만든 뒤 수천 번의 가상 실험을 진행했다.

이어 ‘YY1’과 ‘MYC’라는 두 유전자가 암세포 전환의 핵심 스위치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두 유전자는 세포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데, 억제할 경우 세포가 정상 성질을 되찾을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연구팀은 두 유전자가 함께 조절하는 지점을 추적해 종양 성장을 촉진하는 ‘USP7’ 효소를 최종 표적으로 삼았다.

연구팀은 실제 대장암 환자에게서 유래한 장기 모델에 USP7 억제제를 투여했다. 그 결과 암 조직 성장이 크게 줄고 정상 대장 조직의 특징이 일부 회복되는 모습이 확인됐다. 리버트 기술 예측이 실제 실험으로 입증된 것이자, 암세포가 정상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교수는 “기존 암 치료가 암세포라는 기계를 부수는 망치였다면 리버트는 그 기계의 회로도를 이해하고 잘못된 스위치를 찾아내 다시 켜는 정밀한 도구와 같다”며 “세포의 운명을 되돌리는 새로운 치료 전략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세포·오가노이드 수준의 기초 연구 단계로,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되기까지는 임상적 검증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향후 다양한 암종으로 확대 적용해 새로운 예방·치료 전략을 모색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는 국립암센터 공익적암연구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사업·기초연구실사업,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질병 중심 중개연구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앞서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IF 14.1) 1월 온라인판에도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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